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Then I said to you, "Do not be terrified; do not be afraid of them.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The LORD your God, who is going before you, will fight for you, as he did for you in Egypt, before your very eyes,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and in the desert. There you saw how the LORD your God carried you, as a father carries his son, all the way you went until you reached this place."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In spite of this, you did not trust in the LORD your God,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who went ahead of you on your journey, in fire by night and in a cloud by day, to search out places for you to camp and to show you the way you should go.
인생행로에는 우리가 꼭 넘어야 할 많은 분수령이 있습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보면 생사의 고비, 성패의 고비, 행과 불행의 고비 등을 들 수 있으며, 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나이와 함께 통과해야 할 고갯길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송구영신은 해마다 넘어가는 고갯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 받아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황하는 광야40년 동안 여러 번 고갯길을 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본문에 나타나는 「가데스 바네아」의 현장입니다. 이 현장은 광야의 여정에서 산지와 평지로 발을 들여 놓는 전환점이었고, 기다림의 자리에서 성취의 길목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고갯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체험할 때 거의 예외 없이 그 마음에 두려움이나 불안이 크게 작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와 같은 두려움의 덫에 걸렸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올라가 싸워서 얻으라고 명령합니다마는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 번이나 반복하여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 (21,29절)고 격려합니다.
우리 역시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심리적인 현상을 전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불안이란 미 확인된 위협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며, 두려움은 확인된 위협에 대한 마음의 반응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모든 것이 좋아졌는데도 「롤로 메이」라는 심리학자가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 중의 하나는 불안과 공포라고 말한 것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려움이나 불안이 우리에게 주는 해독은 사람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힘을 뽑아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축복을 주저하다가 다 놓쳐버린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축복을 불안과 공포 때문에 주저하다가 다 놓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불안은 쫓아야 합니다. 쫓아내지 못하면 우리가 거기서 자유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공포에 짖눌린 이스라엘 백성을 치료하기 위해서 중요한 권면을 했습니다. 요약하면 30절에 「애굽에서의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했고, 31절에는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32절에 가서 「애굽에서의 하나님」과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하게 부정형을 사용하여 말했습니다. 즉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길은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을 재발견한 다음 그 하나님께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먼저 애굽에서의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다. 애굽에서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30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들의 목전에서 애굽의 모든 신과 싸우신 분이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1년 동안 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불신앙은 과거를 잊어버리게 하고, 과거가 주는 지혜를 받아 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이 어떤 분 입니까?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 하시고, 자기 자녀 삼으신 하나님 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불안과 공포가 밑바닥에 깔려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므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다음으로 광야에서의 하나님을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과정은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다의 쓴 물, 신광야에서 배고픔과 갈증, 크고 두려운 광야 길을 걸으면서 그들은 공포와 싸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안으셔서 인도하셨으므로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했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으며(31절/8장 4절) 그들을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행할 길을 지시하신 분이십니다(33절). 그들은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앞에 놓여있는 전쟁과 산악지대만 바라보고 두려워서 공포에 질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